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자식을 바꿔치기 당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부성애'란 무엇인지, 아버지의 정체성은 혈연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함께한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묻는 감성적인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심리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주인공 료타의 내면 변화와 자아정체성의 전환 과정을 분석하고, 영화가 전하는 부성애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심리학: 아버지의 자아갈등
료타는 일본 대도시에 살며 고급 아파트와 안정된 직장, 이상적인 가정을 꾸린 전형적인 엘리트 가장입니다. 겉보기엔 모든 것을 갖춘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철저히 경쟁 중심적이고 통제 욕구가 강한 성격입니다. 그는 아이의 삶을 마치 자신의 프로젝트처럼 계획하려 하며, 감정보다 결과와 성취에 가치를 둡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는 자기애적 성격 유형(Narcissistic Personality)의 특징을 일부 반영합니다. 이 유형은 완벽주의,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 부족, 과도한 자기 기준 등이 포함되며, 료타는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 합니다. 하지만 자식이 바뀌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면서, 료타의 내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이 상황을 단순한 실수 혹은 정리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믿고 있던 '가족의 정의' 자체가 흔들립니다. 심리학자 에릭슨이 말한 '정체성 혼란(identity confusion)'이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료타는 자식과의 관계가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하며,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재해석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심리적 재구성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는 점차 감정을 억누르던 기존의 자아에서 벗어나, 진짜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탐색하는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부성애: 유대감의 재정의
부성애에 대한 영화의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전달됩니다. 료타는 영화 초반, ‘진짜 자식’이라는 개념에 철저히 집착합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밝혀진 친생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키워온 아이인 케이타보다 생물학적 자식에게 더 큰 책임과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부성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과연 부모란 혈연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함께한 시간과 정서적 교감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인가? 심리학적으로, 부성애는 단지 생물학적 유대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보울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부모와 아이 사이의 안정적 애착 형성은 아이의 전 생애에 걸쳐 심리적 안정과 자아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줍니다. 료타가 케이타와 함께한 시간은 단순한 육아가 아니라, 그들만의 고유한 관계를 구축해온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 이 시간을 과소평가하며, 피가 섞인 아이와 새로운 유대를 만들면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친자식과 시간을 보내며 그는 큰 혼란을 겪습니다. 오히려 감정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고, 진짜 자식이라는 개념이 주는 감정적 충만감이 없음을 자각하게 되죠. 반면, 케이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감정을 흔듭니다. 이는 그가 피보다 ‘기억과 감정의 공유’가 더 본질적인 유대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부성애를 단순한 책임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의 결과로 재정의합니다. 부성애란 피가 아니라, 서로를 위한 선택과 시간 속에서 서서히 쌓여가는 신뢰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아정체성: 아버지가 되는 시간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지 아이가 생겼다고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료타가 점차 아버지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곧 자아정체성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초기의 료타는 자신이 설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회사에서의 위치, 주변의 시선, 사회적 기준 등은 그의 자아를 압박하고, 그는 그 안에서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려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감정적 개입이나 아이와의 자연스러운 교감이 결여돼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심리학적으로 ‘역할 정체성(role identity)’에 고착된 상태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료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역할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외부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더 귀 기울이며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아이와 손잡고 걷거나, 작은 실수에도 웃는 그의 모습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감성의 표현입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그는 ‘부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 구축해나가게 됩니다. 이 과정은 인간의 자아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료타는 더 이상 사회가 만든 틀 속의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반응하며 존재하는 아버지가 됩니다. 이 여정은 곧 성숙의 과정이며, 삶에서의 진짜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결국, 아버지란 타이틀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에 의해 정의된다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아버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되어가는 것’임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료타의 변화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현대 가족과 부모의 역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당신이 부모라면, 혹은 미래의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이 영화를 통해 부성애와 자아정체성의 진짜 의미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